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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세미나]차별받던 쑤베이(蘇北)출신 상하이 사람

노수연 소속/직책 : KIEP 중국 권역별 성별 연구팀 부연구위원 2010-08-23

 중국에서 가장 경제가 번영한 상하이 지역 - 이곳 상하이 토박이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중국인들을 ‘시골사람’이라 부를 만큼 상하이 사람으로의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한편 150여 년 전엔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상하이시가 오늘날처럼 경제적인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된 데에는 이민자들의 역할이 주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 이민자들 사이에도 출신지역에 따라 오랫동안 차별이 존재했는데, 그중 쑤베이(蘇北) 출신 사람들이 바로 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하이시는 1843년 난징조약(南京條約)이 맺어짐에 따라 개항을 하게 됩니다. 이때 많은 외지 인구가 유입되었는데, 크게 두 지역에서 상이한 집단이 몰려왔습니다. 하나는 저장(浙江)성의 닝보(寧波), 샤오싱(紹興)지역과 장쑤(江蘇)성의 우시(無錫), 창저우(常州) 일대를 의미하는 장난(江南) 지역 출신 사람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장쑤성 북부 지역을 의미하는 쑤베이(蘇北) 지역 출신 사람이었습니다. 


  이들 두 지역 간에는 직업, 교육수준, 언어, 생활습관 등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장난 지역 출신자들은 주로 정부관료, 상공업, 고급기술자들이 많았고, 이들은 시내 중심의 번화가에 거주하면서 고급문화와 생활을 즐겼습니다. 이에 반해 쑤베이 출신은 주로 기아와 전쟁을 피해 상하이로 온 농민들이었기 때문에 문화적 수준이 떨어졌고, 인력거꾼, 부두 잡역부, 청소부 등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시내 외곽 판자촌에 모여 살았습니다.   


  실제로 1934년 상하이시 사회국(社會局)이 인력거꾼 304명의 출신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5.7%가 쑤베이 출신이라고 합니다. 1958년 조사에서도 비율이 조금 줄긴 하였으나 전체 조사대상자의 77%가 쑤베이 출신이었답니다. 또한 1980년대 초 조사에서는 목욕탕 종업원과 이발사의 절대 다수가 쑤베이 출신이었습니다. 이처럼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쑤베이 출신자의 비중은 1980년대 초까지 매우 높았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쑤베이 사람들에게는 ‘프랑스사람(法國人)’이란 별명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왜 ‘프랑스 사람’일까요? 사실 상하이시 발전 초기에 몇몇 프랑스 사람이 이곳에 이발소를 개업해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는데, 이후 이발사 대부분이 쑤베이 출신이 되다보니 ‘쑤베이 사람 = 이발사 = 프랑스사람’이라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성립되면서 쑤베이 출신 사람들 모두를 우스갯소리처럼 프랑스 사람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죠. 


 가난은 되물림된다고 했던가요, 가진 것 없고 배움이 부족한 쑤베이 사람들의 2세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아버지 세대가 하던 일 뿐이었고, 장난 출신 상하이 사람들은 쑤베이 출신자들을 ‘가난하고, 더럽고, 무지하고 거친 사람들’이라고 무시했는데, 이런 차별대우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도 오랜 기간 계속되었답니다. 


 그래서 한때는 배우자 선택의 조건 중 하나가 쑤베이 출신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어린 자녀가 쑤베이 출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했답니다. 쑤베이 출신들은 출신지를 밝혀야 할 경우 애매하게 ‘장쑤’라고만 썼으며, 집밖에서는 절대 표준어만 사용하는 등 쑤베이 출신임을 애써 감추려고 했었습니다. 

 

 

                         상하이 판자촌의 모습                                                                과거 판자촌으로 유명했던
                         사진출처: www.sina.com.cn                                                      싼완이룽(三灣一弄)의 변모된 모습


 그러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쑤베이 출신에 대한 인식도 차츰 개선되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정치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우선 중국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당시 상하이시에 거주하던 주민들에게 상하이 후커우(戶口)를 주고, 다른 지역에서 상하이로의 신규이주를 억제하면서 기존 주민들은 ‘나는 상하이 후커우를 소유한 사람’이라는 특권의식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 때 쑤베이 출신자들도 똑같이 상하이 후커우를 받음으로써 ‘나도 장난 출신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상하이시에서는 기존의 장난출신과 쑤베이출신의 차이보다는 오히려 도시 후커우 소지자와 농업 후커우 소지자의 차이가 등장했죠. 또한 당시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상하이시 정부와 군 관료 중 쑤베이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쑤베이 출신 상하이 사람들도 자부심이 생겼답니다. 그밖에도, 문화대혁명 시기 타지로 끌려갔던 상하이 젊은이들이 타지에서 고생하면서 장난, 쑤베이 구별 없이 ‘상하이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단결하게 된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쑤베이 출신에 대한 차별은 더욱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구시가지 개조 과정에서 쑤베이 출신들이 몰려 살던 판자촌이 모두 철거되고 새로운 주택단지가 형성되면서 이들이 자연스럽게 흩어져서 다른 지역 출신자들과 어울려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예전처럼 쑤베이 출신자를 대놓고 무시하는 상하이 사람들은 없어졌습니다. 물론 언어습관이 아직 남아있어서 요즘도 더럽고 교양 없는 사람을 간혹 ‘쑤베이사람’이라고 욕하기는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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