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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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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연구기관에서 발표된 중국 연구 자료를 수집하여 제공합니다.

연구보고서

가속화되는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 미국 탈동조화 전략의 배경과 진행 상황

김기수 2022-09-14

1. 서언

세계경제로부터 중국을 분리한다는 의미의 탈동조화(Decoupling)는 트럼프 정부 때 처음 가시화됐다.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을 가시화한 중국과 관련 다양한 견제책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탈동조화다. 중국의 비약적인 팽창을 가능하게 했던 세계경제 메커니즘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로 대외개방 및 대내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78년 12월 중국의 개혁개방 선언을 기점으로 과도한 중앙 권력을 생산 주체에게 이양했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데 두 발 벗고 나섰다.

특히 대외개방, 즉 중국이 세계경제에 편입된 것이 중요했다. 자본 및 기술 부재의 중국경제에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탈동조화의 반대 개념인 중국과 세계경제의 동조화(Coupling)가 중국 발전의 핵심 동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탈동조화는 결국 중국경제의 세계화를 뒤로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탈동조화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과 가까운 다른 국가들이 발을 맞추게 되면 중국과 세계경제의 깊은 연계구도 역시 변하게 된다. 결국 그만큼 중국의 힘이 약해진다는 논리가 탈동조화에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2. 중국과 세계경제체제의 동조화(Coupling)

개혁개방을 통해 공산주의 역사상 처음으로 생산 자유화와 이윤 보장이 실행됐고, 대외개방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뒤를 이었다. 1979년 7월 제정된 ‘중외합자경영기업법(中外合資經營企業法)’은 중국 대외개방의 선언이었다. 중국과 외국의 자본 결합이 허용되어 합자기업(合資企業)이 탄생했고, 외국자본만으로 회사를 설립하는 독자기업(獨資企業)도 등장했다. 자유계약을 통한 기업 간 제휴를 의미하는 합작기업(合作企業) 설립도 가능해졌다. 특히 중국경제의 생산 주체였던 국영기업의 자율권 확대 및 이윤 유보도 보장됐다.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1980년 5월 ‘경제특구(經濟特區)’가 신설됐다. 연안지역 경제개발을 우선한다는 조치였는데, 홍콩과의 연계를 위해 광동성(廣東省)의 선전(深玔), 주하이(珠海), 그리고 대규모 화교 집단이 존재하는 광동성의 산터우(汕頭), 나아가 대만과 근접한 복건성(福建省)의 샤먼(廈門) 등 네 곳에 경제특구가 들어섰다. 외국자본이 특구에 자유로이 들어와 제품을 생산 수출할 수 있게 됐다. 경제개발 초기 가장 유용한 자금 유입 통로였던 화교 자본 유치를 위해 1988년 ‘대만동포 투자장려 규정,’ 1990년의 ‘홍콩, 마카오 화교동포의 투자 촉진 규정,’ 그리고 1994년 ‘대만 동포 투자 보호법’ 등이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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