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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NATO군 ‘희생자 기억의 날 20주기’에 비친 세르비아의 인식과 상반된 시각

세르비아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대학 교수 2019/05/09

‘희생자 기억의 날 20주기’, 세르비아의 인식과 의미


현지 시각으로 2019년 3월 24일, 세르비아 중남부에 자리한 제2도시인 니쉬(Niš)에서 NATO군에 의한 세르비아인 ‘희생자 기억의 날 20주년’행사가 진행되었다. NATO군의 세르비아 민간인 폭격 20주기를 맞이한 이 행사에는 현 세르비아 대통령인 알렉산다르 부취치(Aleksandar Vučić, 1970- , 총리 2014-2017, 대통령 2017- )를 비롯해 세르비아를 대표하는 각계 인사들 그리고 국가 공직자들과 군 지도자, 각국 대사들과 많은 일반인들이 참석하였다. 더불어 세르비아 독립 정교회 주교들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대통령, 당시 불발 폭탄을 제거하다가 두 손을 잃은 군 장교 등이 참석해 연설을 했다. 주요 인사들의 기념사에 이어 1999년 4월 17일 폭격으로 무너진 집안에서 숨진 3살 밀리카 라키치(Milika Rakić)의 죽음을 애도하는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세르비아의 코소보(Kosovo) 알바니아인에 대한 탄압과 학살을 이유로 1999년 3월 24일 코소보 전쟁(1999. 3- 6.)이 발발하였다. 이후로 세르비아 전역에 걸쳐 78일 동안 이어진 NATO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세르비아의 대부분 기반 시설들이 사라졌고, 당시 수많은 공항, 병원, 학교, 공장 및 산업 지대, 문화유적지, 주요 도로 시설물 약 25,000여 개의 시설들이 파괴되게 된다. 특히 서방에선 당시 NATO군 공습으로 민간인 수백 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했지만, 세르비아는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어린이 79명을 포함해 민간인 2,5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서방도 1999년 NATO군의 폭격이 군사, 행정 관청 시설들 외에도 다리와 철로, 기차, 버스 등 여러 기반 시설들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단행되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중국 대사관 또한 당시 오폭으로 인해 3명의 중국인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세르비아 정부는 민간인을 향한 NATO군의 무차별 공습 문제를 상기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2015년부터 이 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추모 행사를 가져오고 있다.


기념식장이 자리한 니쉬의 중앙 광장 현수막에는 당시 NATO군의 민간인 폭격에 대한 세르비아의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어 있다. 여러 선전물들에는 “용서는 할 수 있다. 하지만 (NATO군의 잔악성을) 잊는 것은 우리가 죽은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라는 슬로건이 곳곳에 내걸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알렉산다르 부취치 대통령 또한 기념사에서 NATO군의 폭격 20년이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세르비아는 여전히 NATO군의 자국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 폭격을 결코 잊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행사장에 모인 군중을 향해서 “1999년의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것은 미래 세르비아 국민의 생존권을 위한 매우 중요한 우리들의 의무,”라고 강조하였다. 더불어 그는 지금까지 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단죄가 전혀 논의되지 않았음을 토로하면서 “아무도 민간인을 향한 그런 대량 살상 범죄에 대해 책임진 사람은 없었다. 당시 NATO 공격의 표적이 되어야 했던 우리 세르비아 민간인과 어린이들의 죽음을 절대로 잊을 수 없으며 잊어서도 안 된다,”라고 강조하였다.


‘코소보 전쟁(1999) 20주년’에 비친 상반된 시각


코소보는 세르비아인에겐 ‘민족의 아픔’, 알바니아인에겐 ‘역사의 비극’으로 묘사되곤 한다. 지리적으로 코소보는 동부의 코소보 지방과 서부의 메토히야(Metohija) 지방으로 나뉜다. 코소보는 세르비아인들에게 ‘정신적 고향’으로 이곳은 남슬라브족 일파인 세르비아인들이 6-7세기경 발칸에 정착을 시도할 때 자신들의 중세 왕국 기원인 라쉬카(Raška) 공국을 수립한 곳이다. 더불어 코소보는 세르비아에게 ‘민족의 성지’로 존중되어 왔다. 코소보의 메토히야 지방에 자리한 페치(Peć)는 1219년 콘스탄티노플 교회로부터 교회 권을 독립하여 최초로 독립 정교회를 구축한 성 사바(St. Sava, 1174-1236, 대주교 1219-1233)의 세르비아 독립 정교회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스만 터키의 유럽 원정 당시 1389년 6월 코소보 평원에서 펼쳐진 대규모 전투에서의 세르비아 패배와 이후 400년간의 이슬람 지배는 세르비아 중세 왕국의 몰락과 함께 독립 정교회 권리 상실을 가져오게 했다.


반면 알바니아인들은 코소보가 세르비아 민족의 땅이 아닌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고향이었음을 주장한다. 이들은 세르비아 민족이 정착하기 훨씬 이전에 이곳에 정착했다는 주장과 함께 고대 로마 제국이 발칸반도를 장악하기 이전 이곳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일리리아(Iliria) 부족이 자신들의 선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진 로마 제국 지배 속에서 일리리아 부족은 과거의 정체성을 상실하며 로마화되었지만, 뒤 이어 로마 제국의 몰락 속에 6-7세기 경 발칸반도로 남하한 세르비아인들이 코소보에 중세 왕국을 수립한 이후 자신들의 선조는 주변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아야만 했다고 언급한다. 이후 14-15세기 오스만 터키의 유럽 원정과 이에 따른 세르비아 중세 왕국의 몰락은 이들 알바니아인들에게 과거의 영토를 수복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이슬람화된 알바니아인들이 코소보 지역을 다시 차지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코소보에 대한 양 민족 간 역사 인식의 상이성은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된 현재까지도 이 전쟁에 대한 양 민족의 상이한 시각과 그에 대한 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르비아는 공습이 시작된 1999년 3월 24일을 NATO군에 의한 세르비아 민간인 희생자의 국제사적 의미를 부여하여 ‘희생자 기억의 날’로 지정하고 이를 기념하고 있다. 반면,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은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전혀 상반된 역사적 시각과 해석을 내리고 있는 중이다.


실제,  세르비아가 ‘희생자 기억의 날 20주기’를 침통한 분위기 속에 행사를 치르던 2019년 3월 24일 당일, 코소보에선 세르비아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에서 코소보 지도자들은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이어진 세르비아의 탄압과 공격으로 약 1만여 명이 희생되었으며, 이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라며 알바니아인 희생자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행사를 진행하였다. 실제 이러한 상반된 시각은 ‘코소보 전쟁 20주년’의 의미를 묻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코소보 총리인 라무쉬 하라디나이(Ramush Haradinaj, 1968- , 재임 2004-2005, 2017- )가 언급한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당시 세르비아를 겨냥한 NATO군의 공습 덕분에 오늘날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은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우리의 아이들은 저택에서 평화롭게 자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세르비아가 강요했던 학교가 아닌) 우리가 원하는 알바니아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세르비아에게 남은 난제, 러시아의 개입


이번 ‘희생자 기억의 날 20주기’ 행사에서 밝힌 부취치 대통령의 언급처럼, 현재까지도 세르비아 국민의 상당수는 NATO군의 폭격과 민간인 살상을 범죄행위로 간주해 왔고 이를 지속적으로 국제 사회에 호소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계속 이어갈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은 세르비아가 비록 EU 가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NATO 회원국이 되는 길을 거부하고 그 대신 군사적 중립 선택 의지를 보이는 주요 배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코소보 전쟁 당시 NATO군의 민간인 폭격을 기억하고 이를 단죄하자는 일련의 행사들이 확대되고 그 목소리가 가열되면 될수록 현 세르비아 정부와 부취치 대통령은 일련의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세르비아 내 반(反) 미, 반(反) NATO 정서 확대는 부취치 정부가 국가의 미래 전략으로 강력히 추진해 왔던 EU 가입 정책과 그 의지를 약화시킬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희생자 기억의 날 20주기’ 기간 동안 수도인 베오그라드(Beograd/ Belgrde)에선 극우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NATO는 물론, 당시 민간인 공습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EU를 향한 성토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선 ‘EU+NATO, Neprijatelji Srbije’즉 ‘EU+NATO, 세르비아의 적들’이란 현수막이 내걸렸고 이를 내세운 대규모 거리 행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또한 당시 행사에서 행사 참가자들은 NATO의 국기를 불태우는 것은 물론 EU 국기 또한 불태우며 세르비아의 EU 가입 추진은 곧 NATO와 미국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행사를 주최한 세르비아 극우 민족주의자들 중 상당수가 친(親) 러시아적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이 행사에 러시아의 개입 의도가 다분히 내재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더불어 2016년 11월 총선 직전 몬테네그로의 NATO 개입을 추진하던 총리 암살 계획과 당시 몬테네그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쿠데타 시도를 러시아 정부와 정보 요원들이 지원했다는 의심이 더해가면서 이번 ‘희생자 기억의 날 20주기’의 다양한 행사들에서 러시아로부터 유무형의 지원과 간섭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서방의 여러 추측들이 가열되는 중이다.


이 점은 향후 세르비아의 EU 가입 추진에 있어 러시아의 개입이 확실시된다는 측면에서 세르비아가 그 난관을 극복하고 EU 가입에 안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EU는 세르비아의 EU 가입 전제조건으로 2008년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의 독립 국가 인정을 내걸고 있다. 따라서 세르비아는 우선 국내에서 이를 둘러싼 갈등을 극복하고 합의를 도출해 나가야만 한다. 만약 이를 해결했다 하더라도 세르비아는 이후로도 국외에서 새로운 난관들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된다. 러시아에게 있어 세르비아는 동유럽의 마지막 남은 우호 국가이자 발칸의 중요한 전략적 이해 영역(Interest Sphere)이다. 러시아는 계속해서 세르비아의 EU 가입 추진을 방해할 것이고, 이런 점에서 세르비아의 EU 가입이 보다 본격화되면 될수록 이에 대한 다양한 방해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할 것이다.


세르비아와 부취치의 본심은 어디에?


부취치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 세르비아 정부는 코소보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가족들과 민족주의 단체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EU의 눈치로 인해 오랫동안 15년 동안 이 날을 국가의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지 못하여 왔다.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것은 부취치 대통령이 총리로써 실질적인 권력을 확보하기 시작한 2015년부터이다. 부취치 대통령은 과거 유고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전쟁의 전범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 1941-2006, 대통령 세르비아 1991-1997, 유고연방 1997-2000) 하에서 정보부 장관을 지냈으며, 여러 행적들을 통해 NATO를 향한 적개심과 함께 극단적 민족주의 발언으로 주변 민족들을 자극시켰던 인물이다. 하지만 2008년 우파 정당인 세르비아 혁신당(SNS: Serbian Progressive Party) 입당을 계기로 EU 가입 추진 등 친(親) 서방 개혁주의자로 변신하여 2014년 4월 총리 취임과 함께 세르비아의 EU 가입을 위한 여러 개혁 조치들을 이행함으로써 국제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아왔다. 2017년 4월 대통령 취임에 성공한 이후로도 그는 이러한 정책을 계속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재 부취치는 세르비아의 경제적 어려움 지속과 함께 독선적 정국 운영 그리고 부정, 부패 문제로 인해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번 20주기 행사에서 EU는 서방을 향한 부취치의 연설이 단순히 EU 등 서방을 향한 경고라기보다는 민심 다독을 위한 국내용일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EU는 아직 가입하지 않은 서부 발칸 지역의 2025년 EU 가입을 목표로 코소보 전쟁 20주년인 2019년을 세르비아와 코소보 간 실질적인 관계 정상화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수시로 표출해 왔다. 하지만 이와 달리 EU의 의도는 현재까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게 사실이다. 오히려 이번 행사에 비추어 볼 때 세르비아와 코소보 간 상이한 역사 인식과 태도로 인해 EU의 노력들이 별 효과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이다. 세르비아의‘희생자 기억의 날 20주기’ 행사에 참여한 EU 일부 대사관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당시 공습에 있어 EU의 외교 실패도 중요 원인들 중 하나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우리는 당시 공습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애통해한다,”라는 언급과 함께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도 “이러한 기억들로 인해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정착이 무척이나 힘들다,”라는 속내를 토로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보인 세르비아와 부취치의 정치적 행태 등을 분석해 볼 때 세르비아는 EU 가입 추진과 함께 친(親) 러시아 노선 추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중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호 모순된 두 개의 정책이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어느 순간 세르비아와 부취치 대통령의 본심이 드러나게 될지 주목해서 봐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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